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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나를, 사랑해도 되겠습니까?

샘터 2001년 9월호. 마음의 상처 어루만지는 춤 치료사 박선영씨

내 몸을 내 몸의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 오늘 하루 나의 무릎이 몇 번이나 구부러지는지, 나의 손가락이 어떤 곡선을 그리는지 마음의 눈으로 가만히 따라가 보자. 그러면 타인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보다 더 낯선 기분이 들면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의 몸은 지금껏 기억이나 습관을 좇아 몇 가지 제한된 동작만을 반복해 왔다!’ 일생 동안 및 가지 동작만 똑딱똑딱 반복한다니 애석한 마음도 없진 않지만, 새로운 동작을 시도한다는 것도 왠지 새삼스럽고 어색하다. 그런데 그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내 몸의 음직임에 작은 변화를 주면, 예컨대 다른 때보다 더 성큼성큼 걷는다든지 새로운 각도로 팔을 흔들어보면 의외로 그런 움직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친 김에 좀 더 용기를 내서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 그것이 바로 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막춤이 되는 거죠” 춤 치료사 박선영(38세) 씨의 말이다.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약물 중독 청소년, 노숙자, 정신질환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에 생긴 생채기를 춤을 통해 치료하고 있는 그다. 오랜 시간 춤으로 자신의 몸을 담금질하고 춤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왔기 때문일까? 그의 몸은 표정을 짓고 말을 할 줄 알았다. 금새 춤사위로 변할 것만 같은 손놀림, 그의 몸에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는 긴장감과 에너지는 그가 ‘춤 치료사‘이기 이전에 ’춤꾼’임을 말해주었다.

고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에 탈을 쓰게 된 것을 계기로 춤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양주별산대, 봉산탈춤, 하회별신굿 탈놀이 등을 배우고 십 년간 탈춤 강습을 하였다. 잠시 카드 장사를 한다며 외도를 한 적도 있었지만, 국악 선율만 들어도 피가 끓어올랐고 그리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춤이 선택한 사람이었고, 결국 춤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991년 대전 시립무용단에 입단해, 5년째 전통춤 공연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것에 회의가 생길 무렵, ‘마음 춤’이란 걸 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마음 가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자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움직였다. 처음엔 모두 같은 동작을 하는 듯 하더니 어느새 각자 변형된 자신만의 춤을 추고 있었다. 춤판 자체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신선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용단 동료들과 ‘마음 춤’을 춰보았다. 춤을 춘 지 10년, 20년 된 동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춤을 춘 것 같다”였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춤을 배우고 싶어졌다. 춤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짐을 쌌다. ‘안정’이란 놈이 발목을 잡을까 두려워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영국에 무용 치료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 나선 길이었다.

런던 시립대에서 3년 간 무용 치료를 공부하고 귀국한 박선영 씨는 1999년부터 ‘춤 치료사(그는 ’무용‘ 보다 ’춤‘이라는 말이 더 친근해 좋단다)’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새샘터의 약물 중독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단체와 병원에서 진행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람 만나는 게 더없이 좋다는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마나 가습에 설레서 잠을 설칠 정도다. 하지만 처음 춤 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이유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사람의 썰렁한 반응하며, 아무 것도 나아진 게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춤 치료가 있기 전날 밤엔 두려움에 잠을 설쳐야 했다. 시행 착오도 있었다. 언젠가 노숙자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분위기를 망치는 한 아저씨를 밖으로 내쫒은 적이 있었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게 조치 한 것이었지만 이내 후회가 되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저 사람을 내 쫒았을까. 사회에서 소외되어 여기까지 온 사람을 이곳에서 마저 소외당하게 하다니…,’

그날 이후, 춤 치료를 하며 그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춤 치료의 기본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런 표현을 통해 나의 진실한 모습과 대면하는 것. 그런데 머리로 사고하는 데만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어려운 요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거나 멋쩍어 하거나 심지어 ‘내 마음이 춤추기 싫다는데!’하며 슬그머니 반항심을 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다섯 개의 리듬’이다. 인생의 각 시기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리듬’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면, 그 리듬이 자기 속으로, 자신만의 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게 된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자신의 춤을 풀어낼 수 있게 될 때, 박선영 씨는 마치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기적을 본다.

언제가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힘들게 손과 손이 서로 맞닿았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연하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치료 시간 내내 목석같이 앉아만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박선영 씨에게 조용히 손을 내민 것이다. 그 순간, 그이의 얼굴이 화악 펴지면서 평온한 두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춤 치료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작은 시도가, 혹은 내 몸을 내가 아껴야 하겠다는 작은 깨달음이 사람을 달라지게 만들기도 하지요.”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하게 다가가고 싶다며 스스로에게 ‘흰바람’이라는 별명을 붙인 박선영 씨. ‘흰바람’을 만난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동안 외면하고 구박했던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행복이 무엇인지 내 몸에게 일러주고,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를, 사랑해도 되겠습니까?’ <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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